본 연구의 목적은 대를 이어 한국에서 교육선교 활동을 한 아펜젤러 가족의 교육선교 활동을 고찰하고, 그 위상을 한국 근대 교육사에서 검토함으로써 이들의 교육선교 활동이 갖는 오늘날의 함의를 살펴보고자 했다.
헨리 아펜젤러는 한국 최초의 근대적 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을 설립했고, 그의 아들 다지 아펜젤러는 이를 고등보통학교로 활성화시켰다. 또한 그의 딸 앨리스 아펜젤러는 한국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을 발전시켜 여성 고등 교육기관인 이화여자전문학교로 승격시켰다. 이들 아펜젤러의 가족은 한국 근대 교육사에 혁혁한 발자취를 남겼던 것이다.
헨리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의 교육목적을 '전인교육' 으로 수립하고, 그 내용을 '지식' , '도덕' , '기독교 신앙'으로 규정했다. 헨리 아펜젤러의 활동은 단지 교육활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봉사활동으로 환원이 되어 구한말 구국운동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또한 그는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통해 자주의식을 함양함으로써 근대적 시민 형성에도 기여했다.
앨리스 아펜젤러는 남성 고등교육도 이제 막 시작한 조선에서 한국 최초의 여성 고등 전문 교육기관인 이화여전을 설립했다. 앨리스 아펜젤러의 교육활동의 특징은 자치활동을 통한 사회봉사 정신함양과 음악교육의 전문화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음악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진 그녀는 한국음악을 정규과정에 포함시켜 학교라는 제도권 안에서 처음으로 국악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민족 유산을 계승한 국악교육은 민족 정체성 확립에도 기여했다고 하겠다.
다지 아펜젤러는 1920년, 선친이 설립한 배재학당의 제5대 교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배재학당은 총독부 인가 중등교육 기관인 배재고등보통학교가 되어 있었다. 기독교 교육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치활동을 통해 종교교육을 활성화 시키고, 체육교육을 통해 민족의식을 함양 시키고자 했다. 근대 체육의 산실이 된 그의 체육활동 장려는 일제시기 독립운동의 대리전 역할도 겸했다.
이 세 명의 아펜젤러의 교육선교 활동의 공통점은 전인교육, 자치활동을 통한 사회봉사 정신의 함양, 민족의식 함양이라고 하겠다. 아펜젤러 가족이 교육활동을 전개한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은 한국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의 한국 사립학교의 모델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미션스쿨들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학교들이 기독교 정신의 이념을 바탕으로 세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의 빛을 잃어가고 있다. 기독교 교육은 물론 사학의 이념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는 이 때, 아펜젤러 가족이 전개한 교육선교 사업은 적지 않는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