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의 목적은 권여선 소설에 나타난 애도 실패 양상을 유형화하여 그 미학적 함의를 고찰하는 데 있다. 애도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에 그 사람을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슬픔이나 고통, 불안 등의 정서적 반응을 뜻한다. 권여선 소설에 나타난 인물들은 애도 작업에 실패함으로써 고통과 불안 등의 정서를 내면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증상은 서사의 전개에 따라 병리적 우울이나 트라우마, 이상 행동으로 나타나고 또 심화된다. 이에 따라 본 논문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권여선 소설이 '슬픔'과 '우울'을 가치 있는 것으로 다루며 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러한 시도가 '문학의 윤리성'을 획득하는 지점으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이상의 근거로 권여선의 작품 중에서 애도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진 소설 네 편을 선정하여 분석하였다. 기본적인 근거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토대로 마련하였고 애도 주체의 슬픔에 수반되는 복합적 감정에 대해서는 벤야민의 변증법적 멜랑콜리와 롤랑바르트의 슬픔의 개념을 참고하였다.
먼저 두 편의 단편소설 「끝내 가보지 못한 비자나무 숲」과 「카메라」를 통하여 애도 주체가 겪는 상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인물에게 나타나는 환각 증상과 분노의 감정은 무의식중에 축적된 슬픔이 표면으로 나타난 것으로, 애도의 반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권여선의 소설에 드러난 애도는 상실 치유로서 기능하기보다는 애도 주체의 슬픔을 정당화한다. 이것이 애도 주체의 슬픔을 제거하거나 긍정적인 결말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지만, 애도가 한층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번째로는 죄책감과 분노의 감정이 구체적으로 발현되는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를 분석하였다.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한 애도 주체가 보이는 이상 행동을 글쓰기와 성형, 유괴, 세 가지로 분류하고, 이런 행동이 대상 상실 후 겪는 멜랑콜리 상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파악하였다. 주인공의 멜랑콜리 상태는 서사와 인물의 대사를 통하여 분명하게 전달되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이를 매개하는 소재가 사소한 사물이라는 것과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심미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주인공이 보이는 이상 행동이 애도 실패의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절망의 상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향한 의지를 내보이며 변증법적 전환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장편소설 『토우의 집』에서는 인물들이 보이는 멜랑콜리 상태의 지속과 그것이 윤리적 함의를 내재하는 지점을 살펴보았다. 먼저 이러한 분석을 위해 소설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암시적으로 다루고 있음에 주목하고 정치적 사건에 연루된 개인의 죽음이 당사자에 머무르지 않고 가족에게 이어지는 양상에 집중하였다. 이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상실했는지조차 모르는 병리적인 우울 상태의 슬픔이 개인에게 한정된 것이 아닌 '약자를 타고 흐르는 사회적 폭력'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문학이 취할 수 있는 정치적 태도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며 소재의 선택만으로도 윤리적 함의를 지닐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처럼 권여선 소설에 나타난 애도 실패 양상은 슬픔이 개인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사회 문제를 돌아보게 하는 지표로 작용한다. 소설 전체에 드리워진 우울의 정서는 서사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미적인 함의를 지니고 의미를 생성해낸다. 이때의 의미는 죽음과 삶, 혹은 그 사이에 놓인 애도 행위와 그것의 실패로부터 파생되는 것이며 이와 같은 지점에서 애도 실패 양상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