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국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안보, 국방, 군사 개념의 혼란이 발생하는 것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본 연구자는 그 원인으로 우리사회에서 안보, 국방, 군사 개념에 대한 명확한 합의 없이 이를 개인 혹은 집단의 주관적 견해에 따라 정의내리고 사용해왔기 때문이라고 밝히면서, 이를 교정하기 위해서는 안보, 국방, 군사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립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 정립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안보, 국방, 군사 개념에 내포된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관점을 고찰해보고 이를 한국 사회의 틀 속에 위치시켜 그것이 형성되고 발전된 과정을 고찰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먼저 안보, 국방, 군사 개념에 내포된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관점에 대한 고찰을 통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안전을 뜻하는 security와 safety는 중세 시대까지는 교회의 보편적 권위 아래에서 개별 국가들이 안전을 보장받는 상태를 뜻하는 safety가 주로 사용되다가 근대 이후 교회의 보편적 권위가 사라지자 개별 국가들이 자조를 통해 안전을 확보한다는 의미로 security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근대 국제질서 속에서 개별 국가들이 security를 추구함에 따라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세력균형과 집단안보 개념이 등장하였으며,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자조와 세력균형(동맹) 등을 통해 국가 취약성을 감소하는 국가안보와 집단안보와 공동안보 등을 통해 국가 외부의 위협을 완화하거나 감소시켜 나가는 국제안보로 발전되어 왔다.
둘째, 국방과 군사 개념은 다음의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하였다. 근대 이전까지 국가들은 권리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군사력의 사용이 정당화된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생각은 근대에도 이어져 군사가 정치적 수단의 하나로 인식되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침략전쟁을 불법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현상이 발생하였으며, 방어를 목적으로 하는 전쟁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이 점차 힘을 얻게 되었다. 따라서 이를 군사와 구분되는 개념으로서 국방이라 명명하였으며, 군사를 국방의 하위범주로 끌어 내리면서 국방을 위한 목적으로서의 군사력 운용으로 격하시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안보>국방>군사로 이어지는 상호 동심원적 체계를 발전시켜왔다.
본 연구는 이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안보, 국방, 군사 개념이 한국 사회에 전파되고 발전되는 과정을 추적하였다. 첫째, 냉전 시기 한국 사회는 국가안보, 그 중에서도 군사안보를 중점적으로 추구하면서 자조와 한미동맹을 통해 안전을 효과적으로 확보하였다. 하지만 노태우 대통령 시기 들어 국가안보와 국제안보를 균형 있게 다루기 시작하였으며, 국익 수호를 넘어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다방면에서 국익을 창출하는 보다 포괄적 의미의 안보를 추구하게 되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서구와 마찬가지로 안보>국방>군사로 이어지는 상호 동심원적 관계를 이른 시기에 정립하지는 못하였다. 그 이유로는 군사안보가 모든 것에 우선했던 냉전 시기의 특수한 상황과 1961년 이래 30여 년간 지속된 군사정권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이 시기 군이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장악함에 따라 모든 사항이 군을 중심으로 운영되었으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군은 특별히 안보, 국방, 군사를 분리하여 추구할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냉전 시기의 안보 개념에 인식은 안보, 국방, 군사 개념을 더욱 모호하게 함으로써 상호 관계를 정립하는데 어려움을 미쳤다.
셋째, 이러한 경향은 탈냉전 시기에 조금씩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시기 등장한 문민정부는 군을 정치적으로 중립화 시키고, 국방과 군사의 문제에만 전념하게 함으로써 안보와 국방을 분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대통령들은 국방과 군사에 관한 문제를 전적으로 군에 위임함으로써 양자의 개념을 명확하게 분리하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노무현 대통령 시기 개념계획 5029의 작계화 논란에서 보듯 국방과 군사 개념은 여전히 혼용된 채로 존재함으로써 종종 상호 긴장을 유발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안보·국방정책과 군사전략이 유기적으로 연계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 개념에 대한 분명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아직까지 안보, 국방, 군사 개념 간의 상호관계가 불분명한 한국 사회에서는 안보·국방정책과 군사전략을 수립하고 집행함에 있어 다소간의 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보다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서 국내의 안보, 국방, 군사 개념 사이의 상호 관련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히고 이들의 개념들을 명확히 정립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