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중국이 핵무기를 최초로 개발한 1964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핵전략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에 대해 핵전력의 주요 변화를 중심으로 분석한 것이다. 중국은 1964년 10월 16일 최초의 원자폭탄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침으로서 핵보유국이 된 이후 공식 핵 정책으로서 '선제 불사용 정책(NFU Policy)'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이어져온 중국 핵전력의 현대화는 미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로 하여금 적지 않은 우려를 나타내게 하였다. 이러한 우려는 중국의 핵전략이 기존의 '최소억제전략'을 넘어서서 '제한억제전략'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선제 불사용 정책'을 추구하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선언적 핵정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반대로 지나치게 과장해서 바라보는 것도 중국의 핵전략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객관성을 저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중국의 핵전략 변화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 핵전력의 주요 변화에 따라 구분하였다. 1단계 시기(1964-1969)인 '실존적 억제전략', 2단계 시기(1970-1990)인 '모호성에 기반한 최소억제전략', 3단계 시기(1991년 이후)인 '가시성에 기반한 최소억제전략'으로 구분하여 파악하였다.
첫 번째로 1단계 시기인 1964년부터 1969년까지는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하고 약 50여개의 소수의 핵무기를 확보한 시기였다. 중국은 당시 핵 보유국이던 미국, 소련, 영국 등 서방국가들에 대응해 억제력을 갖추기 위해 핵무기라는 절대무기의 확보가 중요했다. 이는 핵무기가 갖는 절대적 파괴력을 통해 단 한 발의 핵무기를 보유하더라도 보복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상대가 함부로 공격 할 수 없는 핵무기의 특성에 기인했다. 즉, 중국은 이시기 많은 수의 핵무기를 보유 할 수 없던 만큼 최소한의 핵무기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핵 억제력을 유지하려는 '실존적 억제전략'을 추구하였다.
중국은 자신들의 핵전략으로서 '실존적 억제전략'과 함께 1964년 핵무기 개발 직후 '선제불사용 정책'을 선언하였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핵보유에 대해 '자위적 차원'이라는 정당성을 부여 하였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한 모든 국가들이 '선제 불사용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의 열세한 핵 억제력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도 가지고 있었다.
두 번째로 2단계 시기인 1970년부터 1990년까지는 핵무기 수량의 양적 확대와 함께 대륙간 탄도탄(ICBM), 잠수함 발사 탄도탄(SLBM), 전략 폭격기(Heavy Bomber)와 같은 핵 3원체계 전력 확보를 통해 투발 수단의 다양화를 이루어 냈다. 198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핵전력의 확대는 중국이 자신들의 핵전략에 있어서 기존의 '실존적 억제전략' 수준을 벗어나 '최소억제전략'으로 변모하도록 하는 기반이 되었다. 중국의 핵무기는 1985년도에는 222개로서 핵 강대국인 미국, 소련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비교 할 수 없는 전력차이를 보였지만, 최소억제를 달성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1980년대 후반 핵 3원체계의 완성은 중국이 핵무기를 더욱 정확하고 먼 지역까지 투발 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즉, 이러한 핵전력의 변화를 통해 중국은 핵 억제력을 한층 강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의 핵전력은 미국이나 소련의 핵전력에 비해 부족했고 현대화 되지 못하여 '생존 후 보복'이라는 2차 공격력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였다. 결국, 중국은 이를 극복하고자 핵무기의 규모, 배치, 훈련 등 핵전력 전반에 걸쳐 최대한 은폐하고 공개하지 않음으로서 외부로부터 중국의 핵전력을 바라봄에 있어서 지속적인 모호성을 유지하였다. 모호성을 통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중국의 핵전력과 핵전략을 판단함에 있어서 어렵게 함으로써 억제를 유지하고자 했다. 즉, 중국은 2단계 시기인 1970년도부터 1990년도까지는 '모호성에 기반한 최소억제전략'을 추구했다.
세 번째로 3단계 시기인 1991년 이후부터는 핵전력의 현대화를 통해 핵 억제력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게 됨으로서 점차 자신들의 핵전력을 외부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중국 핵전력 변화의 특징을 살펴보면 핵무기의 수량적인 변화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침투성, 기동성, 사거리 확대로 특징지어지는 현대화를 통해 핵 억제력을 제고시켰다.
이러한 변화에는 1990년대 초 탈냉전 이후 새롭게 시작된 미국의 '탄도미사일 방어 시스템(BMD)'의 영향이 있었다. 중국은 1990년도까지 핵전력의 확대와 투발수단의 다양화를 통해 미국과 소련에 대응해 최소억제전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탄도 미사일 방어 시스템' 개발은 중국의 핵공격이 탄도 미사일 방어 시스템에 의해 무력화 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즉, 기존 중국의 핵전력으로는 외부로부터 1차 핵공격을 받은 이후 2차 보복 공격시 성공이 어려울 수 있다는 억제의 신뢰성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국, 중국은 자신들의 핵전력에 있어서 침투성 강화를 위한 다탄두(mirv), 유인체(decoy) 및 기만체(chaff), 전파방해 기술 개발을 위한 노력과 ICBM, SLBM의 사거리 확대, 투발수단의 기동성 강화를 추구하였다. 그 결과 중국은 핵전력의 2차 보복에 대한 억제의 신뢰성 확대뿐만 아니라 생존성을 증대시킬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은 강화된 억제의 신뢰성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핵전력을 점차 외부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국의 핵전력 가시화는 핵전력의 공개와 함께 훈련 모습까지도 드러내고 있다. 지난 2015년 9월 중국의 전승절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는 최첨단 핵무기를 외부로 공개하였고, 2017년 4월에는 지하 핵 기지와 ICBM을 발사하는 장면을 공개하였다.
중국은 전력적인 과시뿐만 아니라 훈련장면까지도 부분적으로 공개하고 있으며, 올해에는 러시아와 '동방-18' 훈련을 통해 연합훈련을 진행하는 등 핵전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핵전력 가시화에는 핵전력 현대화를 통한 억제의 신뢰성 확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즉,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은 3단계 시기인 1991년 이후부터는 핵전력 현대화를 바탕으로 한 '가시성에 기반한 최소억제전략'을 추구하였다.
지금까지 중국의 핵전략 변화를 3가지 시기로 구분하여 살펴 본 결과 중국의 핵전략은 아직까지는 최소억제전략에 머물러 있다고 판단된다. 향후 중국의 공식적인 핵정책이나 교리의 변화, 핵전력의 확대에 따라서 제한억제전략으로 변화 할 가능성도 있다. 이외에도 미국의 탄도미사일 방어 시스템이나 외부로부터의 위협인식 변화도 향후 중국 핵전략 변화에 있어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 할 것이다.
현재 중국은 핵전력 현대화를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지만 급격한 핵전력의 확대를 추구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중국의 핵전력 현대화 모습을 핵전력의 공세성 강화나 제한억제전략으로의 변화로 이해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핵 억제력에 대한 신뢰성 강화 노력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중국이 핵무기를 최초로 개발한 1964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핵전력과 핵전략의 변화 과정을 살펴봤을 때, 향후 가까운 시일 내에 핵전략을 선회 한다거나 핵전력을 급격히 증가 시키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외부의 안보위협 변화 속에서 자신들의 핵전력에 있어서 억제의 신뢰성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핵전력을 유지함으로서 '최소억제전략'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다만,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성장 및 군사적인 부상과 이에 따른 미국과의 패권경쟁 속에서 향후 중국의 핵전략 변화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관심 있게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