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실존론적 관점에서 최승자 시의 전반에 나타난 시의식 변모 양상에 대한 연구이다. 그의 시의식은 시대의 격변과 고독한 자아의 불안으로 인한 죽음의식이 소멸과 생성의 연결고리 속에서 순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같은 그의 시의식은 시대의 격변과 자의식의 연관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 온 몸으로 응전하던 시인은 근본적인 불안을 통해서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삶의 허무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근본적인 불안과 허무 속에서 시인은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의문에 봉착하게 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그의 시를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여 '어떤 몸으로 응전해야 하는가'라는 전제에서 그의 시에 드러난 의식의 궤적을 살펴보았다.
본고에서는 기존의 연구를 바탕으로 최승자의 시의식의 변모에 대하여 고찰함으로써 아직 논의되지 않은 소멸과 생성의 시간성에 집중하여 살펴보았다. 기왕에 발간된 그의 8권 시집들을 초기시, 중기시, 후기시로 구분하였으며, 그의 시의식의 변모 과정을 실존성, 현존성, 시간성으로 설정하여 각각 세 절로 세분화하여 시의식의 변모 과정을 살피는 데 관심의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초기시에서 시대적 억압과 불안을 고통의 몸과 비극으로 표출하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자아의 내면에 천착한 실존의식을 보여준다. 이를 바탕으로 불안으로 인한 분열된 주체를 자각한 이후 그는 중기시에서 다각도로 세계와 타협하려는 차원에서 현실에 응전하는 현존성 의식으로 변모한다. 이러한 시의식이 후기시에 이르러서는 물리적인 시간에서 벗어나 유일한 시간성을 인식하는 고양된 모습으로 귀결되는 특질로써 부각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Ⅱ장 '자아와 기억의 실존성'에서는 최승자 시인이 느끼는 고독을 절망과 공포, 두려움 등으로 단정하기보다는 자신에 대하여 의미 있게 관찰하고 탐구하는 태도에 대해 조명해 보았다. 1970년대와 1980년 무렵 우리의 현실은 군부독재로 인한 민주화의 열망이 극에 달한 격변의 시기였다. 그의 첫 시집 『이 時代의 사랑』은 이러한 혼돈과 억압이라는 시대적 상처를 시적 자아가 온몸으로 체득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 나타나는 상실의식과 결여의식은 절망의 심연에 매몰되지 않는 특질을 지닌다. 첫 시집에서 두드러지는 부정의식은 시적 자아의 세계에 대한 사랑을 극대화하는 방법론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의 시에서 육체는 정신의 외양이 아니라 삶이 그곳에 근거하는 실존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그의 시에서 '나'에 대한 탐구는 주로 고독의 시적 형상화를 통해 시대적 억압과 개인의 소통의 단절로 인해 미래의 계획이 어긋난 좌절과 절망에서 비롯된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고독이란 형이상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물질적 결핍에서 오는 육체적 문제로 수렴되는 실존적 태도를 견지하기 때문이다.
Ⅲ장 '불안과 분열의 현존성'에서는 최승자 시에서 자기를 앞질러 세계 내에 있다는 것의 의미를 수용한 피투적 현사실성의 방식에 대해 고찰하였다. 현존재의 불안한 실존은 그의 제2시집 『즐거운 日記』에서부터 제5시집 『연인들』에 이르기까지 고루 분포되어 있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죽음의식은 삶과 죽음을 분리하기보다는 죽음을 마주봄으로써 삶과 공존하는 상생의 관계로 인식한다. 그의 시에서 분절된 신체의 묘사는 죽음으로 향하는 불안정한 심적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시적 화자에게 억압된 욕망이 반드시 죽음을 향해서만 치닫거나 열려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저에는 시인은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변증적 인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의 시적 화자가 느끼는 불안은 한 개인의 불안이 아니라 이미 질서화된 세계에 내던져지며 느끼는 근본적 불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적 화자가 어디로 떠나기 위하여 모든 인간들이 몸부림치는 것은 불안을 촉발시키는 죽음의식과 긴밀하게 결부된다. 따라서 그의 시에 나타나는 죽음의식은 삶과 죽음을 분리하기보다는 죽음을 마주봄으로써 삶과 공존하는 시간성의 관계로써 현존하는 특질을 지닌다는 사실을 밝혔다.
Ⅳ장 '소멸과 생성의 시간성'에서는 최승자 시에 나타난 몸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하나의 장소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삶과 죽음이 몸을 통한 공통의 체험을 거치며 역사의 시간성으로 지속된다는 데 중점을 두었다. 여기에서는 고뇌에 찬 시인이 소멸과 생성의 순환적 비전을 모색해 가는 실존적 전 과정이 투사되어 드러난다.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는 육체로써 현존하는 역사란 시간 안에서 실존하는 현존재에게 특유의 생기를 불어 넣는다. 그가 인식한 고독과 소외로부터 출발하는 현존재의 죽음의식이란 궁극적으로는 삶의 연장선상에서 선택한 존재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에 근거하여 그의 시에 나타나는 죽음을 향한 인간의 삶을 조명하고, 죽음으로 가는 삶에서의 자아와 세계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의 시간성을 면밀히 검토하였다. 본 연구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자유로울 때 그런 존재자만이 미래적으로 존재한다는 데 가치를 둔 것이다. 최승자 시인의 시에서는 현존재가 숙명적으로 실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역사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는 궁극적으로 시간성 안에서만이 현존재로 거듭난다는 생성의식을 통해 역사성을 재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만의 독자적인 시적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