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의 대장전이라 불리는 '남과 북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는 왜 이행되지 못했나? 이 논문의 핵심 질문이다. 이 논문이 제시할 가장 단순하고도 본질적인 답안은 "국제(동북아)-남북-국내 측면에 걸친 전방위적 '비대칭적 탈냉전'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다. 좀더 직설적으로 단순화하면, 북방정책을 추진한 노태우 정부의 탈냉전 전략의 부재의 결과다. 이 답안을 보충할 보조 답안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그 하나는 이른바 '북핵문제'를 매개로 한 '남·북·미 3각 관계'의 형성과 작동이고, 다른 하나는 '3당 합당'에 따른 국내 정책 추진 기반의 보수화다.
이 논문은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을 '노태우 정부 시기 사회주의권 관계 정상화 외교와 대북정책, 관련 국내 법·제도 정비의 합'으로 규정한다. '국제-동북아(한-중 및 한-소 수교/북-미 및 북-일 적대 지속)+남북(유엔 동시 가입/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국내(국가보안법 개정과 남북교류협력법 제정)'를 서로 연결된 하나의 세트로 다룬다는 뜻이다.
이 논문은 노태우 정부 북방정책의 추진·집행·결과를 국제(동북아)-남북-국내라는 3개의 수준(levels of analysis)으로 나눠서 검토하되, 상호 연계성과 영향을 비중있게 다뤄 종합적·총체적 설명을 시도한다. 널리 인정되듯이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의 추진·집행·결과에는 국제 수준에서 '탈냉전', 국내 수준에서 1987년 6월 항쟁 이후의 '민주화' 흐름이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이 논문에서는 '탈냉전'과 '민주화'를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검토·분석에 직접 대입하지 않는다. '탈냉전'은 '남·북·미 3각 관계'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는 방식으로, '민주화'는 '3당 합당'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는 방식으로 북방정책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비대칭적 탈냉전'이다. '남·북·미 3각 관계'와 '3당 합당'은 노태우 정부의 정책을 고리로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로 볼 수 있지만, 한쪽이 다른 한쪽에 전적으로 종속되거나 흡수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범주적으로 구분해야 할 영향 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