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인물의 역할 분석이라는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에 인물 분석의 도구로 로버트 랜디의 역할분류체계와 코헛의 자기심리학을 사용한다.
《갈매기》에는 체홉이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받은 학대의 상처로 인해 아버지 역할-원형archetype으로서의 아버지-이 부재한다. 이는 내면화할 가치의 부재이며 이상화할 목표의 부재로 인물들은 방향을 잃고 서성이는 '길 잃은 자'가 된다.
10명의 등장인물 중 니나와 뜨레쁠레프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역할체계가 고착되어 있다. 아르까지나는 '배우' 역할이 지나치게 확대되어 '위장한자'의 역할을 자주 입으며, 자기애적 성격으로 인해 아들과의 관계에서 '잔혹한 어머니'가 된다.
뜨레쁠레프의 지배적 역할은 '몽상가'와 '어린아이'로 1막에서 영웅추구에 나섰지만 어머니의 인정을 받지 못하자 스스로 '반영웅적 피해자'가 된다. 그는 갈등 상황마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어린아이로 반복 퇴행한다. 그가 '자살자'에 이르는 것도 비존재의 두려움 속에서 자기 확신이 없는 '길 잃은 자'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니나는 역할 반전에 성공한다. 배우가 되려는 열망으로 가득 찬 청소년이었던 그녀는 4막에서 '피해자'로 등장한다. 그녀가 갈매기와 배우를 오가는 장면은 자신의 어두움과 밝음, 존재와 비존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양면성을 통합하는 과정으로, 역할 병존의 상태에서 반전을 일으켜 새로운 역할인 생존자의 역할을 취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