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 채색 분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였던 박생광(1904~1985)은 일본과 한국이라는 두 나라 사이에서 문화의 이념적 갈등을 통하여 '한국적 회화'를 정립시킨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박생광 회화의 초기는 일본 유학의 영향으로 일본 화풍의 영향을 받았지만, 해방 후 한국화단의 무조건적인 채색에 대한 배척과 왜색화가라는 비난을 계기로 우리 전통문화에서 자신의 미술세계를 이루고자 투철한 예술 의지와 실험 정신으로 작업을 추구했다.
재야 화가로써 일본 생활을 했던 박생광은, 1970년 후반부터 전통 소재를 활용한 작품 경향의 '한국화 시리즈'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박생광의 회화 세계를 세 시기로 분류해 보았다. 일본에서 수학 했던 학습기와, 해방을 맞을 때와 시대를 같이 한 척색주의의 실험시기, 박생광 회화의 '그대로 화풍' 을 절정에 이르게 한 완성기 등으로 나누어 시기별 작품 구성 요소를 집중 조명했다.
한편, 강렬한 오방색 그리고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 초현실주의적 추상성, 일본화의 부드러운 선을 탈피한 굵고 거칠며 자신감 넘치는 주황색 선의 사용, 사찰의 문양과 창살 무늬를 도용한 기하학적인 구도, 서구의 미술 사조를 응용한 각 요소들을 박생광은 그의 작품 속에서 어떠한 의미로 변화 시켰는가를 연구하였다.
1982년 인도 순례 여행을 하고 돌아온 후 이루어진 박생광 회화는, 400호를 넘나드는 대형 작업을 의욕적으로 해내면서, 특유의 예술성과 정신적 깊이를 탐색 하였으며, 채색의 변화무쌍한 구사를 집중적으로 실험하였던 과정 및 추구한 방향을 살펴보았다.
한편, 박생광은 작품의 성패와 관계없이 꾸준히 자기 회화 세계의 변모를 꾀하였으며,때로는 활력을 불어 넣는 도전적인 작가 정신으로 자신의 특유한 회화 세계를 펼쳐 나갔다.
이러한, 박생광의 회화는 1985년 프랑스 파리의 전시에서도,한국 미술의 국제화나 현대화라는 측면에서도 결코 낙후되지 않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한국적인 것은 외형적인 것이 아니며, 바로 우리라는 자아를 내재시킴으로 나만의 정신과 구성으로 화면을 전개하여, 우리 문화 속에서 새로움이라는 창작성을 재발견하여 현대적 미감과 조형 양식에 걸맞는 한국적 채색화의 길을 개척한 점을 높이 살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은 서구 미술 양식에 현혹되기 쉬운 오늘의 현실에서 박생광의 예술세계를 다시한번 짚어보는 계기를 삼아 우리다운 것이 가장세계적인 것이라는 화두를 되세겨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