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달에 따른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진행되면서, 현대에 있어서 애니메이션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 영화(animated film)를 의미하게 되었다. 뤼미에르 형제(Lumiere brothers)가 시네마토그라프(Cinematographe)를 발명하고 조르쥬 멜리에스(Georges Melies)가 컷(cut)의 개념과 디졸브(dissolve)를 발견해 트릭필름(trickfilm)의 창시자가 된 이후로 애니메이션 영화는 수많은 연구와 실험을 거쳐 대중예술 장르로 자리 잡게 된다.
모든 애니메이션 영화를 묶어 주는 공통된 기초는 이 영화들이 지속적인 촬영이 아니라 단편노출촬영(single-frame cinematography)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 단편노출촬영, 즉 프레임 촬영은 애니메이션 영화와 실사영화를 가르는 기술적 지표가 됨과 동시에 애니메이션 영화의 운동 이미지를 발생시키는 근원적 테크닉이다. 이런 촬영방법의 결과물로서 나타나는 이미지의 핵심인 ‘운동(movement)’은 애니메이션 영화의 가장 큰 특성이다.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는 실제로 현실의 운동이 촬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어떤 운동도 촬영하지 않는다. 단지 각각의 정지된 이미지가 촬영될 뿐이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영사하기 전까지는 움직임이 존재하지 않고 오직 스크린에서만 그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는 움직임의 환상이,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 된다. 즉 애니메이션 영화의 운동은 모두 현실에 실재하지 않는 허구의 이미지이며, 애니메이션 영화를 규정하는 기술적 정의인 프레임 촬영은 결국, 현실에 실재하지 않는 '운동 이미지(movement-image)'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현실 세계로부터 직접 얻어지지 않는 애니메이션 영화의 운동 이미지는 애니메이션 작가의 운동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발생한다. 애니메이션 운동 이미지의 변수는 시간이며, 그 변수를 통제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 아닌 작가의 관념이다. 따라서 이는 적어도 현실세계를 지배하는 자연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이다. 그렇다면 애니메이션의 운동 이미지는 자연의 법칙이나 현실의 논리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모두 비현실적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영화 속 운동 이미지는 현실의 운동의 양상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운동에 대한 애니메이션작가의 관념은 필연적으로 현실세계의 경험으로부터 형상화되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보이는 운동 이미지는 초현실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 운동 이미지의 초현실성은 애니메이션 영화의 기법 속에 내재되어있다.
수많은 애니메이션 영화의 기법 중 로토스코핑(rotoscoping)이라는 기법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기법들이 운동이 없는 상태의 정지된 피사체를 촬영해 운동을 창조하는데 비해 로토스코핑의 경우는 살아있는 피사체의 그전에 이미 존재하던 운동 이미지를 필름처리를 통해 애니메이션 이미지로 전환하는 독특한 기법이다. 굳이 현실에 존재하는 운동을 로토스코핑을 통해 다시 애니메이션 이미지로 전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은 현실의 운동을 보다 손쉽게 재현하기 위한 기술적인 이유일 것이고 또 다른 측면은 애니메이션 이미지에서만 얻어낼 수 있는 미학적 성취를 위해서 일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애니메이션 영화의 운동 이미지를 바탕으로 로토스코핑 기법의 기술적 특징과 미학적 특성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기술과 미학의 상관관계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로토스코핑 기법에 대한 정의와 역사를 살펴보고, 운동 이미지와 그것이 적용된 공간의 관계, 미디어의 투명성 정도에 따른 수용자들의 반응, 로토스코핑 기법을 창조적으로 사용한 작가들의 미학적 성취와 한계 등을 차례대로 살펴볼 것이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비롯한 영화는 기술에서 태어난 예술양식이다. 연구자는 본 논문을 통하여 기술의 변천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예술양식의 성격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 특성들이 어떻게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활용되고 있는지 알아보고 또한 사례연구를 통해서 애니메이션의 표현 양식과 제작 기법에 대한 기술의 영향으로 인해 나타나는 미학적 현상의 성과와 그 한계에 대한 비판적 시각들을 제기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