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이미지의 시대이다. 가시적 실체가 중심이 되어 현상을 형성하고, 또한 본질을 추구할 때에도 무가 아닌 유, 허공이 아닌 실체를 중시한다. 특히 모든 것을 형태 위주로 설명하는 서구 미술의 기준에서 볼 때 ‘비어있음’은 자칫 형상의 부재이거나 미완성의 공간으로 비춰질 수 있다. 즉 비어있음을 네가티브적인 요소로서, 물리적 재현의 결핍을 암시하거나 그저 비어있는 공간으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그러나 실체에 대한 존재를 눈에 보이는 실체만으로 고정시켜 파악하는 것은 표상화 작용의 한계를 가져온다. 본 고에서는 비어있음이 작품을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서,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완성을 위한 공간’이라는 시각으로 화예조형에 적용, 분석하였다.
화예조형은 조형 예술의 한 분야로서 작품의 조형적 측면과 개념적 측면이 고려되어 다양한 형식과 의미를 나타내는 예술의 형태로 평가되고 있다. 공간을 보다 고양시키고, 부재하지만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서의 비어있음을 통해 화예조형에 있어 스스로 보이지 않는 본질, 의미, 관념 등을 밝히고자 한다. 따라서 화예조형의 조형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차원에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러 관점에서 살펴봄으로서 화예조형에 있어서 비어있음의 분석 기준과 유형을 탐구하고자 한다.
본 고에서는 화예조형에 있어서 비어있음을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연구하였다. 첫째, 어떤 형태의 존재이든 존재는 무존재에 근거를 두고 창조되며 따라서 비어있음이 유용하다는 관점이다. 둘째로, 비움의 공간이 감상자에게 상상력을 제공하는 개방적인 울림의 공간이자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소통의 공간이라는 관점이다. 즉 비어있음으로 더 많은 가치를 내포할 수 있으므로 해석하기에 따라서 아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할 수 있는 적극적인 해석과 창조의 공간이라는 것을 뜻한다. 마지막 관점은 존재 당위성의 측면인데, 이는 자연의 원리로부터 도출한 관점이다. 자연의 프로세스는 생성하는 잠재력, 생장성으로 인해 항상 가능성의 여지를 지닌다. 따라서 실재세계에서 뻗어나가는 것에 대한 존재의 당위성의 측면, 존재의 내재적 근본 성질로서의 비어있음을 말한다. 이는 오늘날 현대 작가들에게 있어서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되고 재해석되고 있다. 또한 많은 작가들이 자연을 스승으로 삼아 무위자연의 정신을 실현하고 비움으로서 자기를 발견한다.
화예조형은 조형 분야에서도 생명을 다루는 특수 분야에 속한다. 따라서 비어있음에 대한 철학을 전개하되 생명의 존엄성을 고려하고, 그것이 미학적으로 연계될 수 있는 사상으로 동양의 노장사상과 서양의 하이데거 현상학을 바탕으로 연구하고자 한다. 노장사상은 비어있음, 무를 철학의 본질로 삼고 자연의 도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하이데거의 현상학에서는 존재와 존재자에 대한 관계를 밝히는데 이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 은폐되어 있으나 작용하는 것에 대한 현상학적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들 이론의 기반을 토대로 본 연구가 이루어질 것임을 밝힌다.
화예조형에 있어서 ‘비어있음’에 관한 세부적인 연구과정은 다음과 같다.
I장에서는 연구 개요를 연구 배경, 목적, 범위, 내용, 방법으로 나누어 요약, 정리하였다.
II장은 비어있음에 대한 고찰의 단계이다. 비어있음에 관련한 관점을 세 가지 차원- 공간 형성의 현상적 차원, 해석 형성의 접점 차원, 존재 당위성의 내재적 차원-을 기준으로 하여 분석하였다.
III장에서는 예술작품에 있어서 비어있음을 연구하였다. 2장의 이론적 고찰을 바탕으로 예술 분야의 비어있음 사례에 적용하여 분석하였다.
IV장에서는 화예의 개념과 특성에 대해 알아보고, 그 특성을 반영하여 비어있음의 분석 기준을 마련하였다. 공간 형성, 해석 형성, 존재 당위성의 3개 관점을 중심으로 각 영역별 유형을 A1-A8, B1-B6, C1-C6로 나누어 세부항목을 정리하였다. 이에 분석 대상을 선정, 사례별로 분석을 실행하였다.
V장에서는 본 연구의 성과에 대한 결론을 정리하고 본 연구를 기반으로 한 향후 연구 과제를 제시하였다.
이번 연구를 통해 분류된 비어있음에 관한 유형이 화예조형 작품 사례에 적용 가능한지를 검증하기 위해 각 유형에 따라 여러 화예조형 작품 사례를 적용하여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였다. 그 결과 분석의 결과, 도출된 21개의 하위 유형이 모두 적용 가능함을 검증하였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화예조형 공간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비어있음의 분류기준을 마련하는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예술 분야의 연구 진행상 연구자가 가능한 타당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분석과 해석의 관점에서 저자의 주관적 판단이 완전히 배재될 수 없었음을 밝힌다.